임계장 이야기, 조정진
임계장은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줄임말로 사람들은 조정진씨를 임계장으로 부르곤 했다. 그는 버스 배차 계장, 아파트 경비원, 빌딩 주차 관리 겸 경비원, 터미널 보안요원의 일을 했지만 모두 비정규직 시급 자리였다. 실제로 그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가 몸담은 장소의 90퍼센트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이었다.
이 책의 중요한 점은 그가 38년간 공기업에서 일한 후 퇴직한 이라는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의 총체적 문제를 돌아보게 한다. 사회의 안전망은 개인이 실패로 추락하더라도 매트를 깔아주고, 다시 기회를 주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역으로 실패의 늪 속에 순식간에 사람을 빨아들이는 것만 같다. 견고한 계급의 벽에 올라서지 않으면 나머지는 늪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그가 잘못한 선택이란 게 있었을까? 회사에 성실히 근무한 것으론 노후 자금에 위기가 올지 모르니 돈을 더 불리는 방법을 추가로 고안해야 했을까? 자식이 부모에게 등록금을 의존하지 말아야 했을까? 조정진씨의 삶은 우리 사회 안의 흔한 이야기다. 그는 결국 은퇴 이후 비정규직 삶을 살게 되었는데 이는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기 어려울 환경이 놓여있었다. 먹고, 자고, 씻는 것이 모두 문제였다. 쓰레기더미를 처리하고, 잡균이 가득하고, 배기가스와 먼지, 혹독한 추위와 더위 속에 그대로 내몰려 자신의 몸을 ‘자해’하는 수준으로 일해야 했다.
무엇보다도 그를 대하는 사람의 태도가 책을 읽으며 가장 고통스러웠다. 마치 그가 하는 현재 일을 타인들은 낮은 위치의 일로 받아들이고, 심지어 그 사람의 위치까지 내려다보고 함부로 대한다. 고용주는 껄끄러운 일 모두 비정규직에 맡겨버리고, 직접적으로 관계없는 사고 모두 경비원에게 변상을 협박한다. 사람들은 그에게 욕을 하고, 어떤 이들은 괴롭히고, 자식에게 '공부 안 하면 저 아저씨처럼 된다.’고 노골적으로 말을 한다. 그 말을 뱉은 이는 아마도 한국 사회에서 자신에게 펼쳐질 노후의 일을 감당하기 위해 더 아등바등 살아야 함을 알지 못할 것이다. 조정진씨를 함부로 대하는 모두는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지도, 이해하려 하지도 않는다.
책은 무엇보다도 자본주의의 무서움을 알려준다. 비정규직의 틈은 인력 90퍼센트를 비정규직으로 가득 채우고, 시급을 올리면 휴게시간 같지도 않은 이동시간을 휴게시간으로 포함해 임금을 덜 준다거나 고용인을 줄여서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의 몫을 하게 만든다. 그들의 처우는 비정규직이란 이름으로 누구 하나 책임지거나 돌봐주지 않는다. 『착취도시, 서울』(이혜미, 글항아리, 2020)에서 대학가 신쪽방이 가득한 지역에 대학교 기숙사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의 목소리에 대해 지역 국회의원은 따른다고 밝혔다. 왜냐하면, 그들이 유권자이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최대 다수 유권자가 아파트 거주자이기 때문에 지역구 국회의원과 행정 당국은 아파트 눈치를 본다. 경비원 근무 환경 개선은 추가 관리비가 들 테고, 아파트 주민들은 이를 반기지 않는다. 결국 경비원에겐 최악의 일터가 나아지지 않는 상황 속에 유지되는 것이다.
책의 감사의 글엔 이렇게 적혀 있다.
‘가족에게 부탁이 있다. 이 글은 이 땅의 늙은 어머니·아버지들, 수많은 임계장들의 이야기를 나의 노동 일지로 대신 전해 보고자 쓴 것이니 책을 읽고 몰랐던 것을 알게 되더라도 마음 아파하지 말기 바란다.’(p.259)
이 책이 암시하는 문제는 사회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이 있다. 비정규직과 현 고용노동 문제는 짧은 시간 안에 쉽사리 해결하기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경비원을 대하는 개개인의 태도만큼은 지금 당장이라도 고칠 수 있다. 모두가 이 책을 읽고 일상에서 마주하는 노동자에 대해 자신의 태도를 점검하고, 고칠 수 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