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서평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김성우X엄기호

권열 2021. 2. 1. 23:04

 

  소크라테스가 문자 기록을 혐오했듯이 오늘날의 영상 매체가 주 리터러시로 되는 현상에 대해 우려하고 부정적 입장을 취하게 되는 것은 내가 그처럼 편견을 갖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선택하였다. 과감한 책 제목에서 유추하듯,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수 없다!'라는 답변을 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책은 단순하지 않았다. 기존의 텍스트 리터러시에 대한 옹호도, 다른 이들이 접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상 리터러시에 대한 걱정을 간단히 다룬 것이 아니었다. 그보단 멀티-리터러시를 주장하며 리터러시가 삶에서 어떠해야 하는가, 어떻게 다뤄줘야 하는가? 철학적으로 논의했다.

 

  우선 리터러시의 정의를 살펴보자. 리터러시는 문해력으로 대개 번역되지만, 시대에 따라 정의는 변해왔다. 말하기에서 읽기로, 그리고 이젠 보는 것으로 리터러시는 모습을 탈바꿈해 가는 것이다. 이 도구는 가히 혁명적으로 우리가 무언가를 인식하고, 감각하는 뇌의 과정 전체를 바꿔버렸다. 가령 말하기에서 읽기의 전환은 지식이 확대되고, 담론 공간을 형성했으며, 과거가 대상화될 수 있는 '역사'를 만들었다.

 

  많은 이들이 읽기의 리터러시 능력이 상실되는 것을 우려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읽기는 유연성, 경제성, 추상적 측면에서 문자를 개념화하고 체계화하고 상징화하는데 독보적인 매체이기 때문이다. 물론 영상 매체의 구체성을 가지나 읽기에서의 고유함을 놓치는 것에 대한 비판이 크기 마련이다. 그러나 저자는 각 리터러시에는 제한을 가지며, 다른 리터러시 간에 우위를 갖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그보다 저자는 '읽기' 리터러시가 일종의 권력이 되어(엘리트의 전유물) 개개인의 역량 부족으로 책임을 돌려선 안 된다고 비판한다. 리터러시는 본래 타자와 나와의 소통으로 이 도구를 통해 타자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선 배제나 차별이 아닌, 요즘 시대에 맞는 멀티-리터러시로의 확장을 통해 타자의 이해에 도달해야 하고 윤리적 주체가 되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저자는 읽기 리터러시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나 저자가 중점을 두는 것은 학교 교육이 '시험을 위한 읽기'에 치중하는 바람에, 보기-말하기 리터러시보다 진입장벽을 갖는 읽기 리터러시를 교육에서 조차 해결해주지 못하는 현 상황을 문제 삼는다. 저자는 리터러시는 개개인의 역량부족이 아닌 제도를 통한 사회의 역량에 달린 문제라고 강조한다.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리터러시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서술한다. 시험에만 치우친 학업이 아닌 공공성으로 나아갈 것을 주장하며, 지식을 위한 입구로 해외 도서관 사례를 든다. 텍스트와 영상을 같이 엮었을 때 더 풍성한 의미가 만들어지는 리터러시 사례를 들고, 보다 폭넓게 타자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책은 두 저자의 대담으로 구성되어 있다. 리터러시가 타자와의 소통과 세계의 마주침임을 책의 전반을 통해 드러냈듯이 책의 구성 역시 두 사람의 깊은 대화를 통해 이를 증명하는 셈이다. 텍스트 중심의 문해력, 제도가 '용인'하는 리터러시의 틀에 벗어나 멀티 리터러시와 삶에 복무하는 도구로의 쓰임을 생각해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