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서평

나쁜 교육, 조너선 하이트 & 그레그 루키아노프

권열 2021. 2. 13. 23:33


  『나쁜 교육』은 현 미국 대학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에 해를 끼치는 사건들에 대해 문제점과 원인을 지적하는 책이다. 저자는 연사를 쫓아내는 시위와 교수 퇴출 시위, 가해자 지목 문화와 같은 일들은 ‘대단한 비진실’을 지적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대단한 비진실’을 유악함의 비진실, 감정적 추론의 비진실, ‘우리 대 그들’의 비진실 세 가지로 구분하고, 이들의 정의와 어떻게 작용하는지, 구체적 사례들을 나열한다. 또한 ‘대단한 비진실’이 일어나게 된 원인과 이에 대한 해결방안을 다룬다. 

  저자가 주장하는 ‘대단한 비진실’은 인지 왜곡의 한 형태로 세 가지로 압축하여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유약함의 비진실은 ‘안전주의’ ‘안전 공간’을 강조하고 확장한 형태로 내게 해를 입힌다는 이유로 민감한 발언을 하는 언사나 부적절한 어휘를 쓴 교수를 퇴출하려는 행동을 끌어낸다. 예를들어, 트라우마란 어휘는 과거 전쟁, 강간, 고문의 상황에 쓰였지만, 최근엔 개인의 사건에 확장되어 이용되고, 이는 발언을 폭력처럼 받아들이게 되는 형태에 종종 이용된다. 그러나 안전을 신봉하는 것은 단단한 마음을 가르는데 필요한 경험을 박탈하고, 더욱 유약한 존재가 되도록 하는 문제를 일으킨다.  

  둘째로 감정적 추론의 비진실은 미세공격microagression을 일으킨다. 미세공격이란 “매일의 일상에서 짧은 순간에 다반사로 일어나는 언어적, 행동적, 환경적 차원의 멸시. 의도적이건 비의도적이건 간에, 유색인종을 상대로 적의, 경멸감, 혹은 부정적인 뉘앙스의 인종적 폄하와 전달하는 것”으로 요즘은 유색인종을 넘어 많은 사람에게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다. 미세공격의 문제점은 소외와 억압을 준다는 이유로 법 처벌에서도 중요하게 다루는 ‘의도’를 무시하고 공격의 ‘영향’만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된다는 것이다. 무죄추정의 원리나 자비의 원칙은 사라진 채 불편은 위험으로 받아들여 능동적 주체보다 희생자 스토리에 자신의 위치를 쉽게 놓게 된다. 

  마지막 ‘우리 대 그들’의 비진실은 인간 본성에 따른 부족주의에 해당하는 것으로 자신을 특정 집단에 놓고. 내-집단을 ‘선’으로, 타-집단을 ‘악’으로 보는 이분법적인 도덕 매트릭스를 취하는 태도이다. 집단적 특성에 따라 사람들을 결집해 정치적인 행위를 하는 정체성 정치는 좋은 예시다. 정체성 정치는 인종, 젠더, 성별 등 역사적 사건으로 미루어보건대 유의미한 결과를 이끌어냈다. 또한 교차성이론을 이용한 지적 도구는 특권과 억압으로 모든 사람이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 나타낼 수 있어 정체성 정치에 유용한 지적 도구가 된다. 그러나 이는 선과 악을 가르는 투쟁으로 극단적 분열만을 강조하며, 시민들이 다 같이 공유할 수 있는 도덕적 가치에 호소하여 변화를 끌어낸 지점이(과거 정체성 정치에서 강조했던) 현재엔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체성 정치와 미세공격을 이용하여 공공의 적으로 개인을 낙인찍는 가해자 지목 문화가 발달하고, 이는 결과적으로 검열로 작용하여 자유민주주의에 해가 된다. 특히 소셜미디어처럼 익명인 상황에서 공격성은 더욱 심각해진다. 발언은 폭력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은 채로 마녀사냥 형태는 이어지고, 과정 중에 날조가 일어난다. 결국 정치적 사고의 다양성이 현격히 줄어든다. 

  저자는 이러한 원인은 Coddling유난히 지극정성으로 돌봄 때문으로 본다. 양육에 있어서 과잉보호와 놀이문화의 감소와 더불어 안전주의 문화가 강해짐을 지적한다. 또한 대학가는 학생들을 소비자로 대하기 시작했고, 이는 과감한 발언을 한 교수에 대한 학생들의 퇴출 시위로부터 교수를 보호해주지 않는 현상을 유발했다. 결국 교수들은 자체 검열을 통해 논쟁적인 토론이 될 수 있는 주제를 피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다양한 의견들이 오고 가야만 하는 장이 되려 대학가에 사라지고 있다. 저자가 제안하는 해결방안은 원인이 되는 것의 정확히 반대이다. 양육에 있어서 안전주의를 멀리하고, 시카고 대학이 주장하는 ‘표현의 자유 원칙’ 선언문을 기초하여 대학가가 이를 채택하고 행하길 제안한다. 

  앞에서 언급한 지적 도구를 이용해 ‘피해자 의식문화’를 내면화하는 것이 검열의 형태로 이어지거나 건강한 논의의 장을 막는 태도로 이어져선 안 된다. 이는 불편과 폭력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여 피해자를 위하는 길이 아니다. 물론 타인을 위해 세심하고 배려심 있는 태도로 대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의도와 상관없는 발언으로부터 받은 심적인 피해에 대해 이를 역으로 타인을 공격하는 무기로 이용해선 안 된다. 불편함을 지적할 수 있는 사회를 원하지만, 불편함을 오직 희생자 위치에서 받아들여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되 받아치며 이를 다양한 의견이 오갈 수 있는 논의의 장으로 끌어낼 수 있는 태도를 나 역시 갖췄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