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

재난의 양면성 - 1. 재난의 긍정적 키워드: 평등과 연대, 공공성, 회복 탄력성

권열 2021. 4. 13. 01:23

1. 재난의 긍정적 키워드: 평등과 연대, 공공성, 회복 탄력성

 

 

  재난이란 낱말에 어떤 이미지들이 연상되는가? 당신은 당신이 직접 겪은 재난을 곧바로 떠올릴 것이다. 만약 재난을 겪지 못한 이들이라면 대중매체에서 다룬 이미지를 즉각적으로 떠올릴 것이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폐허가 되고, 좌절하는 사람들, 고통에 찬 희생자들. 혹은 영화에서 극적 요소로 그리는 것처럼 시민들이 무질서하게 발버둥 치는 장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이와 대척점에 서 있는 영웅. 대개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쩐지 재난을 주제로 할 땐 충분히 일어날 법한 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는 영화가 재생산하는 것이 재난에 관한 통념이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실로 재난에 관한 비극적인 사건들은 존재한다. 중세시대 원인을 알 수 없던 흑사병이 우물에 독을 푼 유대인 탓이라는 풍문에 의해 유대인 학살로 이어진 광기는, 20세기 초 관동대지진 사건에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것으로 되풀이된다. 마치 재난의 공통점인 것처럼, 영화는 이 소재를 드라마 하기 쉽고, 우리는 재난에 관해 파괴적이고 비극적인 속성에만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재난을 한쪽으로 과하게 치우쳐진 시각으로만 보는 것은 재난을 이해하기도, 대처하기도 어렵게 한다. 재난은 두렵다. 재난은 피해를 준다. 재난은 비극이다. 그러나 그것이 재난의 전부는 아니다. 실제로 거시적 측면에서 재난이 불행한 사건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유럽 인구가 1/3이 감소한 극단적인 흑사병이란 질병의 결과는 농노해방과 계급의 변화, 새로운 세상이 이어졌다는 점. 수많은 질병과 재난이 세계사적 흐름을 바꿔온 예시를 역사적 문헌 속에 살펴볼 수 있는 점을 근거로 한다. 그렇다면 거시적 측면이 아니라 미시적 측면에서 재난을 바라봐도 재난에 긍정적인 측면이 존재할까? 레베카 솔닛의 『이 폐허를 응시하라』는 재난의 공동체적 연대 행위를 설명하며, 재난이 혁명과 닮았다는 의미로 ‘재난 유토피아’라는 단어를 붙인다.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과 화재, 1917년 캐나다 노바스코샤 주 헬리팩스 항구에서 발생한 폭발사고, 1985년 멕시코시티의 대지진, 2001년 뉴욕 세계무역센터 붕괴, 2005년 뉴올리언스에 불어닥친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례 속에서 사람들의 인터뷰, 경험, 재난학자의 재난학 연구를 다루는 것을 근거로 한다. 실제로 재난학자들의 연구에서 재난 속엔 기존 통념과 다른 긍정적인 요인들이 있는 것을 증명한다. 

 

  이에 대한 요소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평등성과 연대 (2) 공공성에 관한 적극적 참여 (3) 사상적 전환 혹은 회복 탄력성이다. 이들은 재난에 관해 파괴, 무질서, 통제되지 않는 광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요소이다. 대중매체에선 재난에 관해 여전히 비극적 이미지와 영웅주의를 되풀이하고 있지만 이미 20세기 초부터 이를 반박할 수 있는 연구성과가 존재한다. 한 사람의 영웅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승리가 있고, 무질서가 아닌 시민들의 자발적인 즉흥적 질서가 있다. 서문에 인용한 소설처럼 재난 유토피아는 실제로도 존재하는 것이다.

 

 

  20세기 중반 찰스 프리츠Charles E Fritz의 연구는 재난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는 사람들이 전쟁이나 재해를 직면했을 때 대응 방식이 어떠한지 탐구했다.[3] 재난에 대한 통념과 실제 연구로 밝혀진 사실을 일부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다. (1) 극한의 패닉이 관찰되지 않았다. 혼란 없이 목표지향적인 모습을 보인다. (2) 강한 자기희생과 자기통제력을 보인다. (3) 살인, 폭행, 공격적인 행동도 널리 퍼진 통념과 달리 빈번하지 않았다. (4) 시민들의 무정부 상태와 분열이 발생하지 않았고, 공동체 내에 즉각적인 리더쉽이 일어났다. 프리츠는 1961년 논문에서 “어째서 대형 재난이 건전한 정신 상태를 가져오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재난 시기에 사람들은 공포와 혼란에만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재난 공동체’가 만들어지며, 이를 통해 일체감을 경험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재난학자 콰란텔리Quarantelli 역시 대처하는 방식에 따라 재난재해가 사회에 장기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재난재해를 대처하는 과정에서 회복 탄력성(사회적 복원력)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는 900여 건의 화재에서 2000여 명의 행동 조사와 700건 이상의 재난 연구를 통해, 재난이 발생할 때, 대중들에게 공황이 일어나는 사례는 없다고 증명했다. 다인즈Dynes와 로드레게르Rodriguez는 뉴올리언스를 초토화시킨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대한 사건 기술에서 “소동· 반사회적 행동, 공황과 같은 무질서한 행동만 보이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4] 이들 연구에 의하면, 재난이 일어날 때 집합적 행동이 일어나며 이러한 집합적 행동은 이미 형성되어 있는 조직 이외에 개인들이 연대하여 새로운 조직적 행동이 이루어지기도 한다(혹은 기존의 조직이 확장되기도 한다). 이러한 조직적 대응은 재난 상황에서 발생하는 일반적인 행동 양식이며, 이들은 재난재해 극복에 효과적이고 공동체나 사회의 탄력성에 기여한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는 재난을 이겨내기 위한 움직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공성 참여 경험의 확대로 시민사회의 출연 계기가 되기도 하고 민주주의 성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는 레베카 솔닛의 책의 일부분, 멕시코시티의 사례에서 살펴볼 수 있고, 존 C. 머터의 『재난 불평등』에선 미얀마에 불어닥친 나르기스 사이클론에 대한 정부의 제대로 된 대처가 없자 지역 비정부기구들의 적극적 활동을 통해 시민들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자립과 자치에 대해 인식하게 되었다고 서술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사례는 어떠한가? 한국의 경우 개발 중심의 압축적 성장 정책에 치중하여 여러 차례 비극적 인적 재난 사고가 일어났다. 대형 재난 후 뒤늦게 재난 예방에 대한 정책들이 시행된 점은 안타깝지만,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이 마련되고 시설물 안전관리와 관련된 다양한 제도 개선 대책으로 사고 재발 방지에 성공한 경우 재난 복원력의 사례임은 분명하다. 2007년 태안 허베이스피리트호 유류유출사고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연대적, 사회적 참여의 예시로 꼽을 수 있는 사건이다. 이 사고는 삼성중공업 크레인선이 충남 태안 만리포에 정박 중이던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에 충돌하면서 1만 2000t 이상의 기름이 유출된 사고로, 태안 인근 바다는 심각하게 오염되었다. 이로 인해 관련 수산업, 관광업 등에 엄청난 피해가 발생하였는데 전국에서 대략 100만여 명의 봉사자가 태안을 방문하여, 헌신적인 자연 봉사를 하였다. 전문가들은 수십 년이 걸려도 사고 이전으로 되돌리기 힘들 것이라고 비관적인 전망을 했으나 국립공원관리공단 관계자는 "해수 내 유분 분석 결과 이미 2009년부터 국내 해양 환경 기준 10분의 1 정도 수준으로 회복돼 이제 해수 내 유분은 없다고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는 사고 이후 전국에서 달려온 약 100만 명의 자원봉사자들 덕분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5] 이 사고는 재난 대응 과정에서 시민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할 수 있을지 극대화된 사례로 볼 수 있다. 

 

  내가 이 글에서 재난의 연대성과 공공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재난을 오직 엘리트적, 관료적인 통제로 관리해야 한다는 방식만이 옳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레베카 솔닛의 책은 재난으로 발생하는 혐오의 학살을 기존 엘리트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주도한 것이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에게는 재난의 비극적 사건에 원인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곤 하지만 재난으로 일어날 수 있는 비난 프레임의 인지적 오류로 인한 행위를 모두 엘리트의 탓으로만 돌리기엔 어렵다. 그렇지만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엘리트들이 재난에 대해 잘못된 명령을 내린 수많은 사건이 존재하고, 앞으로도 잘못된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캐런 체스Caron Chess와 리클락Lee Clarke이 제시한 용어, “공황 상태에 빠진 지배층(엘리트 패닉)”은 지배층은 시민들이 공황 상태에 빠질 거라는 생각 때문에 공황 상태에 빠지고, 상황을 과장하여 공황 상태를 유발하고, 스스로 공황 상태에 빠지는 과정을 정의한다.[6] 미숙한 결정과 돌발상황인 재난을 긴급히 다뤄야 하는 과정에서 관료주의적인 태도는 유동적이고 긴급한 사건에 유연한 대처를 하지 못하며, 그들의 일반적인 태도, 가령 대중을 관리 대상으로 보고 지도와 계몽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재난을 대처하는 데 있어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대중들은 재난이 일어나면 스스로 연대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누군가의 명령이 없어도 자발적으로 행동한다. 현재는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일반 시민들이 피해 현황을 기록하고 공유할 수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피해 사실 교류가 재난에 관해 단순히 불안을 공유하고 증폭하는 것이 아니라 대처를 효율화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 기여를 할 수 있음이 밝혀졌다.[7]

 

  그러므로 언론은 단순히 재난을 선정적으로 과장하여 보도할 것이 아니라 대중이 자발적으로 제공하는 정보와 참여에 주목하고, 행여 발생할 수 있는 비난프레임을 최소화하여 가짜뉴스 방지에 나서야 할 것이다. 뉴올리언스를 파괴한 허리케인 카트리나 재난은 재난에 관한 통념이 엉켜 비극을 안겨준 대표적인 사건이다. 실제로 뉴올리언스에선 서로서로 돕는 연대성이 빛나는 순간들이 일어나고 있었으나 이를 다룬 언론 매체들은 재난에 대한 통념 그대로 난폭한 반사회적 행위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하고 약탈, 강간, 살인, 짐승에 가까운 상태, 슈퍼돔에 쌓여가는 시체 등을 잘못 보도하였다. 인간은 재난 앞에 대체로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재난학자의 연구에도 불구하고[8] 재난 보도 프레임엔 여전히 온갖 오해와 편견이 뒤섞여 있는 것이다. 실제로 슈퍼돔에 사망한 사람은 여섯으로, 네 명은 자연사, 한 명은 약물 과도 복용, 한 명은 자살로 밝혀졌다. 식품과 생필품을 훔친 것을 약탈로 보고 이를 과장했으나 재난에 빠진 이들에게 정부의 미흡한 대처만 존재하던 상황 속에서 약탈을 단지 범죄로 볼 수 있을까? 결과적으로 가장 냉혹한 폭력을 저지른 당사자는 다름 아닌 뉴올리언스 경찰과 백인 자경단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뉴올리언스의 허위 재난 보도는 앞서 언급한 “공황 상태에 빠진 지배층”을 자극하고, 과잉 진압을 위해 수많은 병력을(최대 배치 시 주 방위 대원이 5만 116명, 현역 연방군 대원 2만 1,408명) 투입했다. 탐사 기자 A. C. 톰슨에 따르면 당시 백인 자경단이 무려 열한 명의 흑인을 살해한 것으로 본다.[9] 결국 뉴올리언스 사건은 재난 속에서 시민들의 연대성은 지워진 채로 뿌리 깊은 인종적 차별까지 더해진 비극적인 참사가 되었다. 

 

  재난이 닥칠 때 혼란 대신 시민들이 모두가 평등한 관계 속에서 연대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재난의 긍정적 요소를 알아야만 재난에 관해 올바른 대처를 할 수 있다. 특히 재난을 다룰 관료들과 언론이 더 이상 재난에 관한 통념에 매몰돼선 안 됨을 지적하고 싶다. 그들의 과잉반응은 비극적인 결과만 낳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아야 할 재난의 비극적인 모습은 무엇일까? 우리가 떠올리는 재난의 피해들, 파괴, 폐허, 수많은 사상자와 같은 결과론적인 측면 이외에 놓치기 쉬우나 반드시 유념해둬야 할 재난의 부정적 측면은 무엇일까? 

 

 

 


참고문헌

 

- 레베카 솔닛, 『이 폐허를 응시하라』, 펜타그램(2012)

- 존 C. 머터,『재난 불평등』, 동녘(2020)

- 김성희, 이준웅, “소통연구 관점에서 본 재난과 위험인식의 재개념화: ‘환경 재난 담론모형’의 제안”,  커뮤니케이션 이론 vol.15(2019), pp46-104. 

 

[3] Charles E Fritz, "Human Response to Disaster", Proceedings of the Human Factors Society Annual Meeting, Volume: 18 (1974), 323-323 

[4] Dynes, R. R.,  Rodriguez, H., "Flighting and Framing Katrina", The socialogy of Katrina: Perspectives on a modern catastrophe (2010), 25-36 

[5] 박주영, "태안 기름유출 10년…123만명 손으로 다시 찾은 바다", 2017. 12. 03,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171129129300063

[6] Lee Clarke and Caron Chess, “Elites and Panic: More to Fear than Fear Itself", Social Forces 87, no. 2 (2008), 993-1014

[7] Goodchild, M. F., "Citizens as sensors: the world of volunteered geography", GeoJournal, 69(4), 211-221(2007)

[8] E. L. Quarantelli, “Conventional Beliefs and Counterintuitive Realities,” Social Research: An International Quarterly of the Social Sciences 75, no. 3 (2008): 873-904

[9] A. C. Thompson, “Katrina’s Hidden Race War,” _The Nation_, 2008. 12. 17, http://www.thenation.com/article/katrinas-hidden-race-w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