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직업실록, 정명섭
직업으로 보는 조선시대 민초들의 욕망
조선왕조실록의 다방면 기록 덕분에 우리는 세부적인 부문사로도 역사를 접근할 수 있다. 실록의 디지털화는 이를 더욱 유용한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교과서에서 다룬 중심 사건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흥미로운 기록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민중들의 삶도 기록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거의 모든 역사에서 외면받는 민초들의 삶은 이렇듯 꼼꼼히 적힌 실록을 통해 재발견 될 수 있는 것이다. 기록의 힘은 역사를 승리자의 기록으로만 제한하지 않는다.
<조선직업실록>은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조선의 ‘직업’을 다룬다. 직업은 당대 사람들의 욕망과 필요가 정확히 구현된 것이다. 즉, 그 시대에 존재했던 직업의 목록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당시의 삶을 알 수 있다. 또한 특정 직업이 현재 다른 형태로 대체되거나 사라졌다면 이 역시도 과거와 현재의 차이점을 나타내는 중요한 사료이다. 책은 총 3부 구성이다. 1부 조선에서 직접 고용된 직업군, 2부 민중들의 욕망을 통해 존재했던 직업군, 3부 다소 어두운 직업군을 구분하여 소개한다.
민중들의 삶과 욕망을 알기 위해선 나라에 고용된 직업군보다는 2부와 3부에서 다루는 직업들이 더 흥미롭다. 예를 들어 변호인 역할을 한 외지부, 원활한 상업행위를 위해 필요했던 호객인 여리군, 양반집에 직접 방문해 책을 판 책쾌, 귀했던 얼음을 팔던 장빙업자, 이야기꾼인 전기수와 재담꾼 등이 있다. 이들 중 몇몇 직업군은 나라에서 금지하기도 했으나 민중들의 필요 덕분에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민중들의 삶에 정확히 닿아있던 직업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인상적인 직업군은 곡비다. 곡비는 타인의 장례식장에 가서 큰 소리로 울어주는 일을 하던 여인들이다. 현재와 달리 과거엔 장례를 중시했기에, 장례에 통곡 소리가 시원찮으면 이는 체면과 직결되는 일이었다. 이런 뒷말을 막기 위해 조선시대 사람들은 사람들을 통곡하는 여인들을 고용하곤 했다. 실제로 그들의 가장 큰 고용주는 선왕의 장례식을 치르는 왕실이었다. 곡비에 대한 반대 여론도 많았지만, 체면이란 이유로 곡비의 고용은 계속 이어졌다고 한다. 곡비는 현재엔 찾아볼 수 없는 직업군이다. 그러나 장례가 아닌 결혼식을 떠올려보자. 사람들은 결혼식에 하객 수가 적지 않길 원한다. 하객을 고용하는 것은 마치 과거 곡비를 고용하는 것처럼 ’체면’을 중시하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는 셈이다.
직업은 결국 사람들의 욕망을 반영한다. 그러다 보니 현재에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직업은 과거 조선에도 있기 마련이다. 특히 약자들이 서로를 착취해서 벌어먹거나 기득권의 욕망에 의해 약자를 착취하는 직업군들이 그러하다. 형벌을 다른 이가 대신해 몸으로 떼우는 매품팔이나, 성을 사고파는 조방꾼, 추잡한 과거시험을 위해 존재했던 선접꾼과 거벽, 양반의 노비를 사냥하던 추노객 등이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들은 숨길 수 없는 삶의 이면이기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과거의 직업들이 현재에도 이름과 형식만 바꾼 채로 존재하는 점이 씁쓸하지만 말이다.
<조선직업실록>은 실록의 풍부한 인용과 이야깃거리를 풀어놓는다는 점에서 쉽게 재밌게 읽을 수 있다. 민초들의 삶에서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기 적당한 책이다. 다만 사람들의 욕망을 넘어 특정 직업이 ‘탐욕’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면 그것이 밥벌이라 한 듯 옳은 것일지 따져보며 읽으면 더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