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서평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 김하나, 황선우

권열 2019. 12. 15. 14:00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내 가족입니다


  늘어나는 1인 가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2018년 기준 1인 가구는 28.6%로 2035년엔 40%가 넘을 거라 예상한다. 오래전엔 대가족에서 핵가족화하는 가구 변화에 대해 진지한 논의가 오갔다. 숫자에만 매몰되는 가구 통계치는 이해 가능하다. 이는 소비시장의 변화와 미래의 인구수에 대한 시급성이 달린 문제기 때문이다. 하지만 숫자 통계치에만 주목하는 시선 대신 다양한 가구의 형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는 김하나씨와 황선우씨의 공저 에세이로, 생활 동반자로 묶인 두 사람의 이야기이다. 김하나씨는 카피라이터이자 작가이고,  황선우 씨는 패션 매거진 에서 일한 직장인이다. 우선 이 둘은 커플이 아니다. 6년 전 트위터에서 알게 된 사이다. 각자가 십 년 이상 독신으로 살아보다 문득 누군가와 같이 사는 삶이 자신에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결혼이 아니면서 혼자 살지 않는 방식을 고민하다 뭉친 두 사람이다. 둘은 과감하게 집을 마련하고 공동명의 세대주가 된다. 물론 비용은 반반 부담이다. 

  같이 사는 방식에 대해 이들은 어떻게 느꼈을까? 새벽마다 잦은 잡생각으로 이어진 불면의 생활패턴은 같이 산 이후 사라진다. 한 집에 ‘타인’이라는 존재가 삶을 환기해주고 활기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단단한 삶으로 묶어준다. 동거인에게 부끄러워 뒹굴거리는 모습을 줄이고 상대에게 경제적으로 안정된 사람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전보다 일을 가리지 않게 된다. 이는 기존에 가정을 꾸리면 삶에 더 충실하게 된다는 통념이 꼭 ‘가족’에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타인’의 존재만으로도 우리는 더 나은 나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와 같이 사는 것은 생활의 충돌이다. 둘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물론 다르기 때문에 잘 맞는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김하나 씨는 요리에 젬병이지만 온갖 정리 정돈과 청소에 집착하는 자칭 변태적 성향이 있는 인물이다. 황선우씨는 정리 정돈엔 최악이지만 요리를 즐기는 사람이다. 요리는 황선우씨가 설거지는 김하나씨가 분담하는 환상적 콤비다. 그러나 그 이외에 다름은 잦은 충돌을 만들어낸다. 김하나씨는 짐이 작은 미니멀리스트이고, 황선우씨는 짐이 너무 많은 맥시멈리스트란 점. 청소를 게을리하는 황선우씨의 태도에 김하나씨가 스트레스를 받는 점. 하지만 이들은 연인 관계가 아니다. 생활비도 반반 부담한다. 즉, 누구 하나가 희생할 이유는 없는 생활공동체인 것이다. 해결책은 황선우 씨가 일주일에 한 번 가사 도우미에 돈을 지불하는 것으로 해결된다. 경제력을 가진 어른다운 해결책이다.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양가 가족이 이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다루는 부분이었다. 장난삼아 그들은 양가 가족에게 각자 사위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그들이 상대의 부모에게 잘하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호의다. 부모 역시도 딸 동거인을 호의로 대한다. 전통 결혼의 형태에선 본래 며느리의 입장이 될 둘은 이 관계를 부담 없이 이득만 취할 수 있어서 좋다고 설명한다. 딸 동거인은 딸과 같이 사는 ‘친구’일 뿐 ‘며느리’는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며느리’가 되는 것이 얼마나 많은 의무와 부담을 지니는 것인지 우리는 암묵적으로 알고 있다. 가족이라는 묶음은 관계에 있어서 상하관계를 만들고 서로에게 의무와 책임을 강제한다. 책을 읽다 보면 가족 관계는 본래는 이들의 관계와 같아야 하는 게 맞지 않나 하는 의문을 들게 한다. 

  저자들은 자신이 꾸린 가족의 해체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김하나씨와 황선우씨는 각자 고양이 두 마리를 키웠고 같이 살며 고양이 네 마리를 함께 키운다. 그들은 그들이 꾸린 삶이 끝난다 해도 고양이들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고양이들은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헤어져도 서로가 먼 거리에 떨어지지 않기를 약속한다. 헤어질 때 역시 잘 헤어지기 원칙을 그들은 떠올리고 대비한다. 

  마지막 장의 제목은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내 가족입니다’이다. 책은 생활동반자법을 언급하며 마무리한다. 실제로 한국 사회에서 결혼과 혈연으로 맺어진 형태가 아닌 다양한 가족 형태는 ‘서류’상 규정되지 않은 관계로 잦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14년 생활동반자법은 당시 보수 기독교와 시민단체가 ‘동성혼을 합법화한다’며 이 법안을 강하게 반대해 발의조차 하지 못했다. 현대 사회의 다양한 가족 형태를 고려하면 현재 시스템은 여전히 혈연의 틀에 갇혀있는 셈인 것이다. 이 책은 다양한 가족 형태의 강력한 예로, 가까운 미래엔 다채로운 가족들이 법과 제도로 보장받을 수 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