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공장, 김중혁
모든 상품은 욕망이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상품을 욕망의 결과물만 보게 된다. 이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과정을 보는 건 쉽지 않다. 공장은 외곽지역 건물로 이동하고 외부인은 따로 체험을 허가받지 않는 이상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다. 책은 15개의 공장 탐방 에세이이다. 책의 서론엔 이렇게 말한다. “공장에는 사람이 있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고, 사람이 만들어내는 일이다. 사람을 빼고 공장에 대해 말하는 것은 달의 전면을 보며 후면까지 상상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공장에서 기계는 생산하고, 직원들은 이를 감시하는 역할에 치중한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사람의 손이 제품에 관여하게 되는지 알게 되는지 흥미롭다. 가방 재단실, 도자기의 전사와 화공, 악기의 정음 작업 등 장인정신이 발휘되는 일뿐만 아니라 의외의 곳에서 사람 손을 타는 일이 재밌다. 가령, 콘돔 공장에서 가장 많은 인력이 배치된 곳이 검사실인데, 직원들은 콘돔을 일일이 검사하여 불량품을 걸러낸다. 무엇보다도 불량품 하나가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너구리 라면에 다시마를 추가 투입하는 것도 사람 몫이다. 다시마를 가루로 부순 후 넣는 것이 기계가 하기 용의하지만, 소비자들은 다시마 형태가 오롯이 남아있는 것을 더 좋아한다. 소비자의 기호에 맞춰 이 과정은 사람의 손을 거친다는 점이 재밌다.
사람이 하는 일 대부분이 기계화되긴 했지만 이렇듯 기계로 대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기계로 대체할 수 없는 일에도 인력을 구하기 쉽지 않아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브래지어 공장의 경우 브래지어를 만드는 과정은 직원들이 여러 개의 조각 천을 박음질하는데 이 과정은 세부적으로 분업화되어 있다. 현재 공장에서 가장 어린 직원은 37세라고 한다. 봉제 작업을 하는 직원들은 젊었을 때 미싱을 돌리던 이들이었고, 현재 이들 중 한 명이 빠져나가면 그 일을 할 수 있는 대체 인력을 구하기 쉽지 않다고 한다. 기계가 할 수 없는 일이 남아 있지만, 그 일을 할 사람 역시 부족하단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공장 제조 과정 중에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상품과 제조과정의 괴리감이 클 경우이다. 콘돔의 경우 쾌락을 극대화하기 위해 발전하고 별의별 향을 첨가하기도 하는데, 실제 제조과정에선 라텍스 보존을 위해 암모니아를 사용하기 때문에 공장 현장엔 코를 찌르고 눈이 따끔거리는 향이 퍼져있다. 화장품 공장은 사람의 몸에 직접 닿는 제품이기 때문에 청결도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어서, 눈에 직접 닿을 수도 있는 제품인 마스카라 생산엔 청정도 1등급을 유지한다. 마지막으로 지구본 공장엔 지구들이 널브러져 있는 풍경이 재밌게 보였다. 특히 이 공장은 수도가 바뀔 때마다 일일이 수정 재생산을 거쳐야 하는 남모를 스트레스를 안고 있다. 책이 아니었으면 알지 못할 사실이다.
공장에 관한 취재지만 최대의 효율과 이익을 뽑는 것이 목표가 아닌 공장 탐방기에 정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악기 공장이나 엘피 공장이 그러하다. 과정은 공장이지만 어쩐지 공장답지 않는 면을 책에서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기계가 아닌 사람이 하는 일에 더 집중하며 읽어갔는지도 모른다.
책을 읽으면서 특이한 상품을 만드는 이들에게도 일은 그저 일일 뿐이지 않을까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공장장의 인터뷰에선 그들의 자부심과 자긍심을 읽어낼 수 있었다. 책은 15개의 공장에 대해 작가 자기 생각을 더하며 김중혁 작가 특유의 재기발랄한 문장으로 재밌게 읽어갈 수 있었다. 무엇보다 아직도 공장은 기계와 사람의 균형이 잘 어우러진 곳이었다. 기계화 비중이 앞으로 더 늘어나게 될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결국 미래의 공장 모습은 또 지금과는 다르게 변할 것이다. 미래의 공장 취재기엔 사람이 그만큼 부재할 것인 만큼 이 책보단 덜 재밌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