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서설, 에릭 A. 해블록
플라톤은 <<국가>>에서 전통과 관습을 보존하는 정치적 목적으로 쓰인 '시'를 비판하며 새로운 교육체계를 주장한다. 시는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운율과 반복, 사건의 나열, 청자로 부터의 일체감의 특징을 가졌고 이에 대해 플라톤은 악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플라톤과 이전 철학자들은 새로운 언어체계와 추상의 세계로 나아가는 혁명을 시작한다.
당대의 시는 예술로서의 시가 아니라 문자교육이 되지 않던 시절 구송문화로 청중들에게 사회적 관례와 같은 전통적 메세지를 함유하며 전달하는 교육체계의 독점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구송을 통해 관습과 전통을 재현하고, 연극적 표현 방식을 통해 대상을 끊임없이 모방하는 과정을 오랜시간에 걸쳐 되풀이 하고 있었던 것이며, 이를 통해 집단 공동체의 충성심을 강화하는 정치적 사회적 백과사전의 역할을 하였다. 이는 새로운 교육체계를 주장하기 위한 플라톤에겐 시를 비판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분석과 경험의 분류, 인과 관계, 주체와 대상의 분리를 주장하는 플라톤의 철학에 당대의 시는 큰 장애물이었던 것이다. 플라톤은 시의 내용을 비판할 뿐 아니라 시만이 가지고 있는 형식과 표현 양식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시는 당대의 에토스를 전달하기 위한 효과적인 목적을 위해 기억 강화의 기술들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시는 운율과 반복이라는 강력한 형식상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둘째, 시는 청자로 부터 정서적 일체감을 주었다. 또한 정치적인 인물로 대표되는 영웅을 등장시키고 그들의 구체적인 행위와 사건들의 연쇄를 나열하여 각각의 에피소드에 전통적으로 지켜야 할 사회적 관습에 대해 흥미롭게 열거하였다. 하지만 플라톤은 시의 특징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한다. 그는 미메시스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주체와 대상을 분리하고 인식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인데 시의 연극적 표현 방식은 심리적 몰두와 일체화를 주기 때문에 문제라고 주장했다. 또한 시가 다루는 내용들은 인물들의 구체적인 행위와 사건이므로 이들은 통일감 없이 존재하여 서로가 포함하는 내용이 모순적임을 지적하는 동시에 구체적인 사건 나열은 추상적인 개념을 형성하는 것을 방해한다고 지적하였다.
플라톤은 인식하고 생각하는 영혼을 중시하며 보고, 듣고, 느끼는 자기 일체화의 습관에서 고안하고, 계산하고, 인식하는 자율적 의식을 가진 자아 개념을 창안한다. 구체적 사건과 다양한 예시들로 등장하는 '시'와 달리 '그 자체'의 추상적 개념을 등장 시키면서 본래의 구문법을 파괴하고 '다'를 드러냈던 시를 '다'가 '일'로 전환할 이데아를 주장하게 된다. 이는 플라톤 한 사람의 유산이 아니라 플라톤 이전 철학자들로 부터 천천히 이뤄낸 혁명이다. 알파벳의 발명은 구송문화의 해체에 기여를 곧바로 이뤄내기엔 시간이 걸렸을지 모르나 이전의 시적 구문법을 버릴 수 있도록 뒷받침 역할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헤시오도스는 호메로스와 다르게 <<신들의 계보>>라는 저작에서 신들의 이름과 그 역할을 정리하며 추상화된 초기형태, 집합과 조직화, 통합의 노력을 담기 시작했다. 또한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과 소크라테스는 자신들의 추상적 관념체계에 필요한 새로운 언어들을 개발하고 최소한의 언어들을 추가하며 일반적 개념 토대를 만들기 시작했다. 밑바탕이 갖춰진 후 플라톤이 관념의 산문을 최종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그리스 문화는 시가 지배하던 호메로스 정신세계에서 추상적 세계인 플라톤 정신세계로의 혁명적인 전환을 맞이한다. 위대한 철학은 기존의 사고 체계를 반박할 강력한 무기로 탄생하며, 이들은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끌어 낸다. 호메로스 이후 제일 첫번째 전환으로 여겨지는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와 호메로스의 저서를 비교해 가며 내용의 측면만 읽어갈 것이 아니라 이 책에서 언급한 전환의 핵심을 파악하여 읽어 보는 것이 새로운 과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