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간결한 감상
야만인을 기다리며, 존 쿳시
권열
2020. 3. 31. 23:16
이제까지 읽은 쿳시의 책 중에 가장 노골적으로 친절한 책이다. 번역자 왕은철 씨가 쿳시의 세계에 관해 쓴 글에서 그는 쿳시의 ‘타자성’을 강조했다. 쿳시의 소설은 타자의 타자성을 존중하고 결국은 닿을 수 없는 위치에 놓인 계급적 갈등을 묘사한다. 이 때문에 그의 소설이 단순히 아파르트헤이트의 배경으로만 그치지 않는 것이다. 『야만인을 기다리며』는 이를 분명히 묘사한 소설로 보인다. 소설의 시작부터 끝까지 타자를 이야기한다. 주인공이 몸 닿는 세계에선 ‘야만인’이라는 타자가 필요하다. 제국은 타자가 존재하기 때문에 굴러간다. 제국 안의 시민은 오지 않는 ‘야만인’의 침범을 끊임없이 신경 쓰고, 잡혀 오는 그들을 강렬한 호기심으로 지켜본다. ‘야만인’은 영문도 모른 채 잡혀 와 끔찍한 고문으로 고통받고 죽는다. 주인공은 야만인 소녀를 사랑하며, 소녀의 아픔을 즉, 타자의 고통을 이해해보려 애쓰지만 끝내 닿지 못한다. 주인공은 타자를 대변하는 이처럼, ‘선의 위치’에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역시도 치안판사로 제국에 봉사한 이다. ‘야만인’에게 그는 타자이며, 그에게 ‘야만인’은 끝내 타자이다. 주인공을 읽어가면, 그는 마치 쿳시 본인의 위치를 대변하는 자 같다. 쿳시 자신이 아파르트헤이트에 가해자는 아님에도 가해자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시공간을 지워버린 이 소설에 되레 직접적으로 그려낸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