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츠제럴드 X 최민석,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흥미롭게 지켜보는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장점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공간성이다. 주제 인물이 머물던 장소에 직접 찾아가는 것이 시리즈의 특징이기 때문에, 그의 삶에서 공간성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따라 책의 장점이 돋보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여행기를 풀어내는 작가의 역량이다. 시리즈마다 작가는 다른데, 일부 작가는 자신을 책 전면에 배치하고, 반대로 어떤 작가는 자신을 최대한 숨긴다. 하지만 시리즈의 테마는 여행이지 평전이 아니기 때문에 개인적으론 작가 자신을 드러내는 편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이제까지 읽은 클래식 클라우드 추천작은 페소아, 클림트, 마키아벨리, 그리고 피츠제럴드이다. 이후에 출간된 시리즈는 아직 읽어보지 않았고, 이제까지 읽은 시리즈 중에 피츠제럴드 편이 가장 빼어나다.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피츠제럴드와 그의 작품에 대해 알고 싶으면 피츠제럴드 연구가인 모린 코리건의 『그래서 우리는 계속 읽는다』(책세상, 2016)을 읽는 편이 더 낫다. 그러나 앞에 언급한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두 가지 장점 때문에 이 책은 돋보인다.
첫째, 피츠제럴드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선 피츠제럴드의 삶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의 작품은 자전소설의 색채가 짙다. 특히, 그의 삶에서 공간성은 중요하다. 그는 이곳저곳 떠돌며 호텔에서 지냈고, 그가 머문 곳 대부분은 작품의 배경이 되었다. 또한 피츠제럴드의 삶은 독특하고 극적이라서 작가의 삶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성공에 목마른 이가 최정점에 오르고, 결국 몰락하고야 마는 그의 삶은 비극의 필수 요소를 갖춘 셈이다. 피츠제럴드의 삶을 다루는 자체가 또 다른 소설을 읽는 체험을 하게 된다.
다른 하나는 이 책의 가장 특별한 점인데, 작가가 소설가라는 점이다. 최민석 작가는 시작부터 자신이 생계에 곤란을 겪고 있다고 밝힌다. 그는 아침마다 헌책방에 들러, 자신의 책을 팔아 5,000원을 마련하고, 그 돈으로 카페에 가서 글을 쓴다. 이는 마치 피츠제럴드가 인생 말기에 스스로 자신의 절망적인 삶을 고백한 ‘The Crack-up’ 에세이를 연상하게 한다. 당시 에세이는 대중들에게 비웃음을 사고 피츠제럴드에 대해 한물간 이미지를 각인 시켜 자충수를 둔 선택이 돼버렸지만, 최민석 작가의 고백은 피츠제럴드의 삶과 자신의 삶을 비슷한 결로 겹쳐 보이게 하므로 책의 성공적인 서두가 된다. 서두에 이어 작가는 '몰락’한 피츠제럴드의 삶으로 책을 진행해 간다. 뒤집힌 순서는 뻔하지 않은 신선함으로 다가와 책에 더욱 몰입하게 한다.
무엇보다 작가는 피츠제럴드의 키워드를 ‘계급’에 주목했고, 그의 삶을 추적할 때도 계급을 상징하는 공간을 방문한다. 프린스턴 대학의 코티시클럽, 예일클럽, 작품의 배경이 되는(피츠제럴드가 머문) 여러 지역 부촌들, 플라자호텔 등 작가는 장소에 방문하면서 계급을 말하고, 동시에 계급을 체험한다. 장소는 여전히 배타성을 지녀, 작가의 방문에 탐탁지 않은 눈총을 보낸다. 입장에는 거절과 복잡한 단계, 철조망, 비싼 요금이 뒤따른다. 피츠제럴드가 느낀 계급 문제를 100년 후 작가가 같은 공간을 방문하면서 느낀다는 것은 사회에 계급 문제가 여전함을 보여준다. 계급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들의 위치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 절대 허물어지지 않을 것이다.
피츠제럴드는 자기 삶에서 욕망을 극단으로 밀어붙여 결국 생의 후반부에 몰락하긴 했으나 상류층의 삶을 살아본 셈이다. 그러나 그의 삶을 관조할수록 욕망은 얼마나 덧없는가. 마치 대공황으로 허물어져 버린 듯이, 그의 추락까지도 모두 읽어버렸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욕망은 여전히 굳건한 계급사회 속에선 보편적일 수밖에 없다. 그가 얻고자 했던 그린라이트의 불빛을(위대한 개츠비의 상징인) 이해하고, 계급상승의 욕구를 이해하고, 그의 삶을 이해하고, 그의 추락까지도 독자인 나는 모두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