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독일인의 삶, 브룬힐데 폼젤
『어느 독일인의 삶』은 나치 선전부의 속기사로 일한 브룬힐데 폼젤의 회고록이다. 원작은 같은 제목인 『A GERMAN LIFE』 다큐멘터리로 폼젤의 인터뷰 내용에 기초하여 쓴 책이다. 인터뷰 끝에 이어지는 토데 D. 한젠의 긴 후문은 그녀의 증언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무엇을 유념해야 하는지 분명한 논조가 담겼다. 이 글에선 토데 D. 한젠의 글을 제외하고 폼젤의 증언에서 중요하게 살펴볼 부분만 언급하겠다.
먼저 책에서 폼젤이 누누이 주장하는 ‘몰랐다’에 대해 올바른 정의를 내릴 필요가 있다. ‘모름’은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알 수 없어서 모를 수 있고, 모르고 싶어서 모를 수 있다. 폼젤은 후자에 해당한다. 그녀는 ‘몰랐다’고 끊임없이 주장한다. 나치의 만행에 대해서, 나치 집권 전후로 일어나는 변화에 대해, 자신이 선전부에서 한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몰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치 시대의 산증인들을 상대로 익명의 설문 조사를 한 결과 독일 주민 40%가 이미 종전 전에 홀로코스트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폼젤은 오히려 다른 독일인들보다 ‘알 수 있는’ 환경에 속했다. 그녀의 동료들은 몰래 외국 라디오를 들었고, 그녀가 얌전히 보지 않고 금고 속에 넣은 서류는 나치 정권의 만행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것들이었다. 즉, 그녀의 외면은 그녀 스스로 선택한 외면이다.
폼젤의 증언이 반성과 자기변명의 반복이라는 혼란도 중요하다. 그녀는 그녀 스스로 명령에만 따르고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고 행위를 했다며, 자신을 ‘껍데기처럼 살았다’라고 비유한다. 그러다가도 ‘나는 단지 괴벨스 밑에서 타자를 친 것 말고 한 것이 없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고, 책임을 질 이유가 없다’라고 자신을 변호한다. 그녀는 나치의 만행에 대해 모른다고 반복하면서도 예감하고 있었고,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듯한 단서를 남긴다. 무관심이란 무기로 끊임없이 변명한다. 유대인 친구가 있었으나 오히려 수용소에서 있는 것이 남는 것보다 괜찮을 거야 라고 방관한다.
2013년 다큐멘터리 촬영 후 폼젤은 밝히지 않은 자신의 개인적 갈등을 제작진에게 털어놓는다. 그에겐 반유대인(어머니가 유대인) 애인이 있었고 나치의 인종법 제정에 따라 그는 암스테르담으로 도주했다. 폼젤은 남자의 아이를 뱃속에 갖고 있었는데 유산했고, 암스테르담에 찾아가 그를 여러 차례 만났지만, 당국의 의심이 걱정된 이후엔 만나지 못했다. 이렇듯 폼젤은 유대인 친구, 유대인 애인을 곁에 두고 있었고 그들에게 일어나는 일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이다. 그녀의 내면적 혼란과 분열은 차라리 모르기 위해 자신의 눈과 귀를 막아버린 선택이었다.
폼젤은 왜 나치에게 충성했을까? 그녀에겐 인정욕구가 있었다. 직업을 가질 수 있었고 출세할 수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맹목적 충성심을 보였다. 선전부 직원들의 대다수가 패망의 시기에 직장을 떠났을 때도 그녀는 선전부 건물에 찾아가 몰락의 순간에도 충성을 지켰다. 하지만 이런 그녀의 욕구는 개인적일 뿐이었다. 그녀는 타인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유대인뿐만 아니라 증언을 통해 묘사하길 1차 세계대전 이후 가난한 이들이 고통받고 있는 순간에도 폼젤은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고 밝혔다. 타인에 대한 공감을 그녀가 지녔더라면 그녀는 마땅히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다. 적어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녀의 동료처럼 해외 라디오를 들었을 것이다. 유대인 친구가 간 수용소에 대해 단지 재교육을 위한 환경이라고 가볍게 외면하지 않았을 것이다.
폼젤은 당시 사람들이 히틀러를 새로운 구원자로 낙관했다고 증언한다. 그녀의 증언은 우리가 오늘날의 포퓰리스트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 숙제를 남긴다. 오늘날의 포퓰리스트는 나치를 닮았다. 복잡한 사회에 대해 단순하고 명쾌한 메세지를 남기는데 이는 타인의 증오라는 허무맹랑한 근거를 들어 대중 지지를 얻는다. 『어느 독일인의 삶』은 나라는 존재를 사회적 자아의 나로 재정립하게 한다. 폼젤처럼 개인적 성취와 욕구로 살아갈 수 있는 시대에서,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쉽게 눈감을 수 있는 현실의 타협에서 지녀야 할 진정한 태도를 일깨워준다. 타인은 쉽게 배제되고 증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사회인으로 갖춰야 할 면은 그들을 보호하고 함께 살아가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이는 폼젤의 삶 전반의 회고를 통해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