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피부, 하얀 가면 / 프란츠 파농
“지금 짓는 건축물은 지금이라는 시간성 안에 놓여 있다. 모든 인간 문제는 시간을 기준으로 고찰되기를 요구하며, 이상적인 것은 언제나 현재가 미래의 건설에 쓸모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미래는 우주의 것이 아니며 참으로 나의 세기, 나의 나라, 나의 실존의 미래다. 어떤 경우에도 내가 나 다음에 올 세계를 준비하겠다고 해서는 안 된다. 나는 돌이킬 수 없이 나의 시대에 속해 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위해 살아야만 한다. 미래는 현재의 인간이 떠받치는 건축물이어야 한다. 이 구조물이 현재를 넘어서야 할 것으로 제시될수록 그것은 더 현재에 매여 있을 뿐이다.” (p.13-14)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의 서문에서 강조하는 ‘현재성’은 책이 쓰인 미래의 시대에 해당하는 오늘날에도 여전한 인종 문제의 현실을 바라보게 한다.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은 백인문명에 종속된 유색인의 입장에서 쓴 책으로, 유색인의 심리를 심리학적, 정신분석학적 방법을 이용한다. 파농이 사용한 프로이트, 융, 아들러, 라캉의 방법론이 오늘날까지 유효한지에 대해선 의문이지만 파농의 상세히 서술하는 내밀한 심리기제와 실제경험들은 ‘검은 피부’로 ‘하얀 가면’을 쓰고 살아간 채로 백인과 흑인이라는 단둘로 나뉜 구조에 존재가 매여버린 유색인의 분열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오늘날 다원화 사회에서 나와 타자, 정체성의 문제는 이전과 달리 복잡해졌음에도 여전히 단순화된 인종주의와 인종 문제가 반복되는 현 사회에서 파농의 저작은 이에 대한 고전으로 유효하다. 다만, 파농의 시선과 오늘날 유색인의 심리는 어떻게 다를 것인지를 파악해야만 내가 사는 이 시대의 인종주의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