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의 계보가 ‘상상된’ 것임을 밝힌다면, 민족주의 자체가 허상이며 무의미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민족주의가 상상된 것이라 주장하면서 동시에 민족주의를 긍정한다. 왜냐하면 식민지 해방운동의 사례처럼 수많은 해방 운동에 민족주의가 도왔기 때문이다. 물론 민족주의로 인해 또 다른 탄압과 학살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외면하긴 어렵지만 말이다.
저자는 민족적 상상의 메커니즘에 필수적인 요소로 언어와 인쇄자본주의를 꼽는다. 과거 유일한 공동체로 인식한 종교는 허물어지고, 다양한 언어들이 인쇄자본주의와 만나 퍼지면서 언어는 인한 ‘통일된 장’을 창조했다. 이는 모어와 일상어로 경험하는 조국과 민족이라는 정서적 충만감을 제공했다. 태동한 상상된 민족주의는 이에 그치지 않고 국경을 넘어 ‘해적판’처럼 퍼지기 시작했고, 마치 여러 개의 모듈처럼 민족 개념이 확증되었다. 이후 20세기 중후반 민족주의는 식민 지배에 항거하는 민족주의로, 식민 이전의 기존 문화와 정치를 복원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오히려 유럽 근대화를 교육받은 이중언어를 구사하는 인텔리들의 주도하에 식민 본국의 언어로 민족주의적 기획을 만들어낸, 즉 주조된 정체성의 발현으로 볼 수 있다.
다원화된 사회에서 민족주의는 허물어 가는 이념일 줄 알았으나, 포퓰리즘의 득세는 결국 자신만의 ‘민족’을 강조하며 안팎에 경계를 가르고 외부를 혐오함으로써 ‘민족’을 자신들 입맛대로 재정의한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혹은 민족’이란 이름으로 자행할 수 있는 악을 경계하기 위해서라도, 상상된 공동체’로서의 민족 개념을 오늘날에도 염두에 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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