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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서평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볼테르

by 권열 2021. 1. 28.

 

  엔도 슈사쿠의 <<침묵>>에서 죄없는 이들이 가톨릭을 믿는다는 이유 하나로 잔인한 고문을 통해 죽음을 맞이할 때, 주인공 신부의 ‘주여 왜 당신은 침묵하십니까’라는 외침은 믿음에 대한 외침이었다.

 

  <<캉디드>> 의 배경은 여전히 신앙을 품은 자들이 대다수인 18세기였지만(극소수의 무신론자가 존재하던) 중세는 이미 저물고 근대로 나아가던 시기다. 이 시기를 지배하던 신앙에 관한 라이프니츠의 낙관론은 1755년 끔찍한 리스본 대지진에 의해 뿌리 전체까지 흔들리게 된다. 물론 <<캉디드>>에서 신의 믿음을 버리는 것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소설은 ‘믿음’의 문제를 다루기보단 신을 변호하기 위해 존재한 ‘학설’을 정면으로 비판하기 위해 쓰였다. 라이프니츠의 예정조화인, ‘우리는 가능한 모든 세계 가운데 최선의 세계를 살고 있다’는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이 끝도 없이 마주하는 잔인한 시련과 병치하며 ‘이래도 이 세계가 최선의 삶인가?’비꼬고 만다. 마침내 라이프니츠의 사상은 “헛된 공리공론 집어치우고 일이나 합시다. 그것이 삶을 견뎌 내는 유일한 방법 입니다.”로 가뿐히 치워진다.  

 

  끝내 다다른 곳은 낙관론을 대체할 새로운 사상은 아니지만 “하지만 이제 우리는 우리의 밭을 갈아야 합니다.”라는 말로, 발을 딛인 당장의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오직 삶을 견뎌내는 일이라는 것을 분명히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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