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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서평

배움의 발견, 타라 웨스트 오버

by 권열 2021. 4. 13.



  ⟪배움의 발견⟫은 타라 웨스트 오버의 회고록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독실한 모르몬교 신자로 공교육을 비롯해 정부와 사회제도, 병원 등 사회 전반을 이루는 모든 시스템을 불신한다. 자식들에게 출생 신고도 하지 않으려 하고, 학교도 보내지 않는다. 그러나 저자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17살이 되어 학교에서 첫 배움을 시작한다. 이후 그녀는 케임브리지대 역사학 박사까지 따낸다. 

  그녀에게 배움은 평범한 이들이 받는 교육과는 다른 것이었다. 아버지가 지배했던 피해망상으로 가득한 세상은 그녀에게 권위를 가진 세계의 전부였고, 이를 깨기 위한 유일한 도구가 ‘배움’이었다. 기존 세계에 머무는 것이 모두에게 그렇듯이 그녀에게도(비록 잘못된 세계라 하더라도) 편안하다. 그러나 타라의 가족 안에선 지독한 폭력이 있었고 그것이 정당화되고, 침묵 속에 자리 잡았다. 그 세계는 온전한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벗어나기로 마음먹었다. 결심이 가능했던 건 그녀의 오빠 중 한 명이 아버지의 반대에도 대학 진학에 성공했고, 그녀는 그를 통해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을 접했기 때문이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하늘에서 저무는 태양이 던지는 마지막 빛이 국도 위를 밝히는 것을 보면서 나는 아파치 여인들을 떠올렸다. 그들이 숨을 거뒀던 사암 제단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삶도 이미 오래전에 결정되어 있었다. 말들이 마지막 도약을 하기 전, 그들의 적갈색 몸이 마지막으로 당과 충돌하기 훨씬 전에 말이다. 전사들이 뛰어내리기 훨씬 전부터 그 여인들은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을지 결정되어 있었다. 그 전사들에 의해, 그리고 그 여인들 스스로에 의해 결정되어 있었다. 모래알처럼 수없이 많은 선택들이 쌓이고 눌리고 뭉쳐서 퇴적층을 이루고, 돌이 되고, 바위에 새겨졌다.(p.68)

  그녀는 자신에게 ‘결정되어 있는 듯한 삶’, 아버지의 삶에 반하여, 독학으로 대입자격시험을 공부하고, 대학에 입학하고, 배움을 지속해 나간다. 한 세계의 종결, 뒤틀려 있던 아버지의 세계의 종결은 그녀가 새 세상 속에서 모든 것을 처음부터 배워나가면서 가능했다. 이는 일종의 투쟁이었다. 인식의 투쟁을 넘어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투쟁이 이어졌다. 그녀는 더 이상 가족 내에 존재했던 폭력에 복종할 수 없었다. 배움 전 그녀는 잘못된 가족의 세계에 대해 내면에서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자신의 생각을 내뱉을 수 있었던 행위는 배움을 통해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비로소 제대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갖췄고, 자신의 내면에 움츠리고 있던 자아를 깨닫게 되었다. 때론 답답하니만큼 이 과정은 길게 이어진다. 이것은 소설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을 둘러싼 세상 전체를 뒤바꾸고, 깨어나가고, 가족이란 집단에서 벗어나고, 타협하려 하지만 실패하는 과정이 실제로 한 인간에게서 얼마나 기나긴 투쟁인지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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