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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서평

필경사 바틀비, 허먼 멜빌

by 권열 2019. 11. 21.



멜빌의 위대한 실패


  19세기 미국, 산업화가 정점이던 시절에 허먼 멜빌이란 작가가 있었다. 월가가 탄생하고, 미국 최초 철도가 개통하고, 캘리포니아 골든러쉬가 이어졌다. 밝은 미래에 대한 확신의 얼굴들만이 가득 찼던 그때, 멜빌은 <필경사 바틀비>(1856) 를 썼다. 자본주의의 중심가인 월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은, 기이한 인물인 바틀비를 등장시킨다. 필경사인 바틀비는 “하지 않는게 좋겠습니다.”라는 말을 반복하며 노동을 거부한다. 처음엔 서류를 대조하는 일을 거부하더니 나중엔 모든 일을 거절한다. 

  바틀비 이전엔 에이해브가 있었다. 에이해브는 광기 어린 인물로, 멜빌이 혼신의 힘을 쏟은 작품 <<모비딕>>(1851) 의 등장인물이다. 에이해브는 신을 상징하는 고래와 맞서 싸운다. ‘위엄 있는, 신을 믿지 않는, 신을 닮은 선장 에이해브’로 그를 묘사한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를 외치기도 전이며, 신을 의심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이쯤 되면 멜빌의 소설이 당대에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예상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철저히 실패했다. 책은 거의 팔리지 않았고 조롱과 혹평만이 유일한 반응이었다. 어처구니없는 건 멜빌 본인도 자신이 실패할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제가 가장 원하는 글을 쓰는 일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돈이 안 될 테니까요.” 편집자와 동료들에게 쓴 멜빌의 편지글엔 다음의 문장도 덧붙여져 있었다. “그렇지만 다른 방식으로는 쓸 수가 없어요.” 

  멜빌은 썼다. 쓸 수밖에 없었다는 듯이. 바틀비와 에이해브도 자신들이 패배할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들은 투쟁했다. 투쟁의 대상은 애초부터 이길 수 없는 존재들이다. 바틀비는 자본주의에 대항하고, 에이해브는 신에 대항한 것이다. 어떻게 그들의 투쟁이 실패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멜빌의 소설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겠는가. 독자들의 공감을 받지 못할 19세기 미국에서 말이다.   

  하지만 승리에 필적할만한 성공적인 패배가 있다. 멜빌은 후대에 재발견 되고 그의 작품들은 위대한 작품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모리스 블랑쇼, 질 들뢰즈, 지젝 등 수많은 철학자가 <<모비딕>> 과 <필경사 바틀비> 를 인용하며 자신만의 해석을 전개해 나갔다. 멜빌의 소설은 끊임없이 재해석되었다. 현대 소설에서 기이한 인물이 등장할 때면 독자들은 ‘바틀비적’인 인간의 틀로 새 인물을 해석하게 된다. 당대에 외면받은 멜빌은 오히려 지금까지도 생생한 영향력을 행세하게 된 것이다. 

  멜빌의 두 대표작 중에 <<모비딕>> 이 포경선 이야기이자 방대한 백과사전식 구성으로 진입 장벽이 높다면, <필경사 바틀비> 는 현시대에도 쉽게 읽어갈 수 있는 단편이다. 바틀비 뿐 아니라 다른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도 확고하고 묘사 방식이 위트있기 때문에 이야기 자체로도 재미있다. 

  소설에서 특히 바틀비의 저항의 말투, “하지 않는게 좋겠습니다”가 동료들에게 전염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흔히 바틀비를 ‘소극적 저항’의 대명사로 해석하지만, 그의 저항이 균열을 내고 주변인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을 미루어 보건대 바틀비의 언행을 소극적 저항으로만 보기 어렵다. 바틀비의 저항은 급진적 저항의 시작점이다. 소설에서 다루지 않은 균열 이후의 동료들 이야기를 우리는 마음껏 상상할 수 있다. 어쩌면 독자의 삶과 바틀비의 저항이 맞닿는 순간 진정한 균열이 시작되는 지도 모른다. 

   오늘날 여전한 자본주의와 노동 소외 시대에 소설은 우리에게 묻는다. 개인은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 바틀비의 저항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당신도 바틀비처럼 할 수 있는가? 바틀비처럼 실패할지라도 저항할 것인가? 164년 전 쓰인 멜빌의 위대한 실패작은 우리의 삶을 끊임없이 뒤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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