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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간결한 감상

표백, 장강명

by 권열 2020. 9. 6.

 


  누군가는 궤변라고 지적할 수 있는 자살 선언은 설득력이 없지 않다. 개인적으로 현시대는 어떠한 사상적 전환도 없는 정체된 시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만 표백된 세상에 오점을 남겨 완전해 보이는 이 세상이 전부 허상임을 죽음으로 드러내고 깨뜨린다는 선언엔 다음과 같은 물음이 남는다. 그래서 그다음은?

  책은 대답하지 못한 물음들을 남겼다. 물음만으로도 충분한 소설이 있으나 이는 때론 무책임한 마무리로 보이기도 한다. 가령 주인공이 3년이란 시간 속에 무엇을 할는지 뭉뚱그려 끝맺은 것처럼, 선언 그다음과, 웹사이트 개편의 마무리까지 무엇하나 결말을 달려갈수록 맥이 빠지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나 극단적인 방식이든 어떻든 끝까지 나아가고자 한 소설이라는 점에선 높이 평가한다. 9년 전 소설이라 근 몇 년의 소설과 묶어 평가하기엔 거리감이 있지만, 근래의 사소설화스러운 요즘의 소설과 비교하면 거시적인 틀과 극단적인 방법으로 밀어붙치는 속도감 있는 이 소설이 빛나 보이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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