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원작으로 영화화된 작품을 함께 보면 어떤 순서로 보는 것이 좋을까? 나는 영화를 먼저, 소설을 그다음 순서로 본다. 역순이면 영화에 실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대신 영화를 본 후 소설을 읽을 때면 영화 속 장면이 소설 속에 어떻게 묘사되었는지 떠올리며 비교하고, 영화에서 일부 덜어낸 부분이 소설에선 줄거리를 중심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주인공들의 내면과 생각에 대해 영화보다 얼마나 깊이 들어가는지를 따져보며 읽게 된다.
베넷 밀러의 <카포티>를 본 이후 몇 년이 흘러 카포티의 논픽션 소설 저작 <인 콜드 블러드>를 읽었다. 소설은 고요한 캔자스 홀컴 마을에 클러터씨 가족 4명이 무참히 살해당하고 살인자 페리와 딕은 붙잡혀 교수형에 처하는 이야기이다. 영화 <카포티>는 이 과정을 취재하는 작가 카포티를 그려내고 있다. 카포티는 홀컴 마을 주민과 살인자를 추적하는 보안관에게 사건 취재를 할 뿐만 아니라 직접 살인자들과 만나 교감을 나눈다.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는 순을 전처럼 따랐지만 나는 전과 다른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는 영화가 소설의 내용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 속 화자를 다루고 있어서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의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작가는 클러터씨 가족이 살해당하기 전 어떤 인물이었는지 왜 자세하게 그려냈는가, 작가는 왜 살인자 페리에게 많은 비중을 두고 그렸는가 등을 비롯해 구성에 관해서도 왜 이렇게 구성을 했는지 다른 책을 읽을 때보다 더 따져가며 읽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네 가지 측면을 동등하게 다뤘다. 살해된 클러터씨 가족의 삶과 인품, 사건 이후 주변 이웃들의 변화, 범죄자들, 사형집행 과정 모두 균등한 분배로 다룬다. 그러나 실제로 영화 <카포티>를 보면 카포티는 살인자 페리 스미스에게 애정과 연민을 갖는다. 페리 스미스와 자신은 마치 “한집에 살다가 페리는 뒷문으로 나가고 자신은 앞문으로 간 것 같다”라는 말을 할 정도이다. 페리의 불운한 환경에 자신의 과거에 대한 동질감을 느끼고 그의 다중적인 면을 매력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유사한 비중으로 다뤘다고 하더라도 살인자 페리 스미스를 매력적으로 그렸다면 이는 살인자에 대해 연민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읽는 독자들은 이에 대해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에 대해 거부감이 들게 된다. 클러터씨 가족은 선량한 사람들이었다. 페리 스미스는 충동적이고 폭력적인 면이 있지만, 악으로 낙인찍을 만큼 범죄자의 습성이 강렬하게 보이진 않는다. 죄의 행위는 분명하지만 사람 인격에 대해 ‘죄인’으로 가를 수 있는 경계가 모호한 것이다. 행동만으로 우리는 악을 판단할 수 있을까? 악을 저지른 인간에 대해서 손쉽게 악으로 여기는 것이 이 책을 읽고 나면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인 콜드 블러드>는 주관적 관찰과 묘사를 하는 새로운 논픽션의 세계를 열었다고 평가받았다. 이 점은 영화 <카포티>를 보면 더 알 수 있는 측면이다. 작가는 ‘진실성’을 강조하지만, 그가 쓴 르포엔 그가 담았던 인물에 대한 애정과 고뇌가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소설을 끝마치기 위해서 그는 살인자들이 교수형으로 마감하고, 소설 역시 마감하기를 바랐다. 이런 점에서 <인 콜드 블러드>란 제목은 카포티 자신을 향한다. 소설 안과 소설 밖을 모두 살펴볼 수 있는 점에서 <인 콜드 블러드>와 <카포티> 모두 읽고 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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