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도구가 아닌, 삶 자체의 인문학
서점가의 인문학 붐은 올해도 여전했다. 2010년 <정의란 무엇인가>를 시작으로 쏟아지던 인문학 기본서는 일시적인 물결에 그치지 않고 매해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렸다. 이는 여전히 사람들이 인문학에 관심 있음을 증명하는 셈이다. 하지만 4년 전 베스트셀러인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얇은 지식>과 올해의 책인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를 고려할 때 인문학 자체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제 사람들은 인문학을 실용적 측면에서 필요로 한다. 즉, 인문학으로 포장된 자기계발서를 원하는 것이다.
청소년 교양서인 <자기만의 철학>(탁석산, 2011)은 제목부터 철학을 도구로 다루는 책과는 다르다는 걸 예감하게 한다. 제목의 지향점 그대로 ‘나의 삶에서 나만의 철학하기’ 란 주제를 충실히 따른다. 이를 위해 철학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철학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차근히 풀어준다. 다른 철학 입문서들은 철학사로 시작하여 철학을 어려워하는 이들에게 진입장벽을 주지만, 이 책은 철학자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헤겔과 같은 인물은 이해를 돕기 위한 예시로 인용되어 어렵지 않다.
책은 먼저 철학이 무엇인지 정의하기 위해 과학·종교와의 구분을 시도한다. 세 분야의 공통점과 차이점으로 끌어낸 철학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철학이란 언어라는 논리를 통해 세상을 통째로 이해하려 하고 이를 통해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것이다. 책은 본격적으로 철학을 하기 위해 세 단계를 기하학의 발전과 연계하여 설명한다. 철학에 대해 어렴풋한 보통 사람(잠재적), 경험을 통해 답을 내리는 사람(실험적), 논리를 통해 추상적 사고를 하고 삶에서 철학 하는 단계로 나아가는 사람(연역적)으로 구분한다. 책은 마지막으로 자신만의 철학을 하기 위해선 자신만의 문제에 치열하게 매달려야 하고 당대의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무엇보다도 자신만의 인생을 살려면 자기만의 생각이 있어야 하고 자신의 철학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자기만의 철학을 통해 자유롭고 존엄성을 가진 인간이 될 것을 권한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은 책 밖의 그의 이력을 통해 더 큰 설득력을 지닌다. 철학자 탁석산은 한국인과 한국문화에 통찰을 담은 <한국의 정체성>, <한국인 주체성>뿐만 아니라 대중적인 논리학·철학 교양서로 <철학 읽어주는 남자>, <자기만의 철학> 등 다수의 저서를 썼다. 철학이란 학문의 테두리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대중적 글쓰기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 인물이다.
이 밖에도 탁석산은 <MBN 판도라>, <MBN 신동엽의 고수외전>, <KBS1 TV, 책을 말하다> 등 다수의 교양·시사 프로그램에도 출연하여 현실사회의 사안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하는 인물로 활약하였다. 그는 그가 쓴 책대로 자신만의 철학을 삶에서 어떤 방식으로 실천하는지 몸소 보여준다. 인문학이 실용서로만 활용되는 요즘 그의 책과 그의 삶은 이와 대비된다. 더는 도구로 쓰이는 인문학이 아닌 인문학적 삶을 원한다면 그의 책을 읽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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