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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서평

우리 몸이 세계라면, 김승섭

by 권열 2019. 12. 25.

 

 


  저자 김승섭은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교수이며, 전공은 사회구조와 제도 등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사회역학’이다. 2017년 출간한 김승섭 작가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그해 14개 출판상을 받으며 주목받았다. 이 책은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라는 부재로 질병을 유발하는 일터나 사회적 재난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다루는 동시대성을 가진다.

  <우리 몸이 세계라면>은 몸을 둘러싼 지식의 사회사로, 전작보다 좀 더 넓은 범주의 내용을 포괄한다. 하지만 책의 중심인 ‘몸과 차별’이라는 키워드는 동일하다. 유사한 키워드에 ‘지식’에도 권력이 있어 차별이 내려왔음을 밝히기 때문에 과거부터 이어온 다양한 예시를 살펴볼 수 있다. 

  책의 예시를 살펴보자. (a) 의학 연구는 성인 남성의 몸을 표준으로 삼아 진단·치료한다. 이로 인해 여성의 몸에 과한 약용량으로 부작용이 일어나는 경우가 발생한다. (b) 담배회사는 과학자들에게 연구비를 지원하며 담배가 해롭지 않다는 연구 결과를 얻어낸다. (c) 전 세계적으로 감염성 질환이 가장 많지만, 저소득국가가 비중 높은 질병이기에 이에 대한 신약 개발 투자는 매우 저조하다. (d) 제국주의 시대엔 자신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인종적 우월함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 했다. 

  이렇듯 오랜 시간 이어온 지식의 생산은 중립적이지 않다. 객관적이라 여겨지는 정보마저도 당시의 권력과 관련되어 차별을 유발한다. 인간의 ‘몸’과 관련한 차별적 정보는 사람들의 건강과 수명을 빼앗아버린다. 사람들은 죽음이야말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구별하지 않는 유일한 평등으로 인식하지만, 실제로 사회적 안전망이 잘 갖춰져 있다 해도 정립된 지식 자체가 차별을 포함하고 있다면 차별에서 벗어나긴 힘들다.

  실제로 건강불평등은 예상 수치를 뛰어넘는다. 소득에 따라 기대수명은 6.59년이 차이가 난다. 10세 이하 어린이 사망률은 아버지의 교율률에 따라 2.58배 차이가 난다. 그 중, 절반 가까운 수치가 사고성 재해 때문이다. 이는 즉각적인 치료를 하기 어려운 의료 접근성 탓이므로 곧 사회의 책임이다. 암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암의 진단율은 저소득층보다 부유층에서 더 높다. 하지만 암 사망률은 저소득층이 높다. 이는 부유층이 검진을 더 많이 받기 때문에 진단율이 높게 측정되는 것이다. 결국 건강불평등은 사회적 복지 안전망이 얼마나 갖춰지냐에 따라 최대한 좁힐 수 있다.

  저자는 ‘몸’에 관련한 과거 지식사도 설명한다. 과학적 사실에 무지했던 당시 유대인은 흑사병의 원인으로 지목되어 학살당했다. 굳어진 갈레노스의 의학을 반박한 베살리우스의 해부 지식과 윌리엄 하비의 혈액 지식은 타당한 근거에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제멜바이스는 산부인과 의사가 손을 씻는 행위로 임산부의 산욕열 사망을 막을 수 있다고 이를 실험으로 증명했으나 비웃음을 샀다. 이처럼 과학적 지식은 권력처럼 굳어진 이론을 전복하고 나아간 역사가 있다. 결국, 이는 현재에도 차별이 담긴 지식을 계속 정정하고 나아가야 함을 시사한다. 

  저자는 책의 서문엔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몸은 다양한 관점이 각축하는 전장이다. 즉, 권력과 소외가 연관되어 있어 몸과 관련한 생산되지 않는 지식과 측정되지 않는 고통이 존재한다.”라고 밝힌다. “모든 지식은 특정한 사회적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그래서 지식이 생산된 역사적 맥락을 아는 일이 중요하다.”라는 문장은 이 책이 가질 수 있는 가치를 함축한다. 몸과 차별에 관한 동시대성을 알고 싶으면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이에 대한 지식의 역사를 알고 싶으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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