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2년 6월 폴란드 투입 인원 500명 중 부대 소속 210명에 대한(101 예비경찰대대) 취조 기록을 연구 분석하고 약 125건의 피고인 증언을 토대로 쓴 이 책은 히틀러에 특별히 열광하지 않았던 함부르크 출신 중년 남성들이 어떻게 유대인 집단 학살을 수행할 수 있었는지에 관한 기록이다. 자신이 맡은 임무가 집단 학살이란 걸 알자 500명 중 12명의 대원들만 이를 거부하였고, 사살 시작 후엔 10~20퍼센트가 유대인 학살에 회피나 면제 요청을 하였다.
어째서 적은 숫자만이 유대인 학살을 거부했을까? 저자는 유명한 스탠리 밀그램 실험과 비교하며 이유에 대해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하였는데 첫째는 권위에 대한 복종이며, 둘째는 동료 압력이다. 밀그램 실험은 윤리성을 지운 채로 윗사람의 명령에 굴복하여 잔혹한 행위를 하게 되는 경우를 설명해주는 근거로 유명하다. 그러나 저자는 실제 101 예비경찰대대에서 이 요소는 크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유대인 집단 학살은 위로부터 명령이긴 했으나 트라프 장교 같은 경우 유대인 학살에 강압적인 장교가 아니었고, 대원이 원하면 빼주었고, 유대인 학살을 거부한 이들에게 처벌 기록 사례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임무 수행을 거부할 경우에 내려질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없을 것으로 짐작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보다 저자는 동료 압력이 이 잔혹한 일을 수행하는데 핵심적 역할을 했으리라 본다. 101 예비 경찰대대가 점령지에 주둔했기 때문에 대원들이 서로 긴밀하게 의존하는 관계였고, 이는 저절로 동료들 사이에서 고립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환경이었다. 이때 유대인 학살 임무는 그들에게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아닌, 자신들이 임무에 참여하지 않으면 동료에게 미루는 이기적인 행위로 해석되었다. 유대인 학살을 거부한 이들도 자신이 옳은 일이나 선량한 일을 했다고 주장하는 대신 자신들이 나약해서 못하는 것이라 강조했는데, 이는 ’선’을 말하면 임무를 수행하는 동료가 ‘악’이 되기 때문이었다. 결국, 유대인 학살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강인하고 사나이다움으로 정당화되었다.
또한, 101 예비경찰대대가 직접 학살에 참여하지 않고 유대인을 학살 현장으로 이동시키고 경비 서는 일을 할 경우엔 그들이 직접 사살하는 선택의 고통 앞에 서지 않는 다는 이유로 정신적 충격을 받지 않았다. 심지어 집단 학살에 연루되었다는 느낌을 거의 받지 않은 것으로 보고된다. 나치는 유대인 학살 임무 과정에서 사살조 대원들이 피와 뇌수와 뼛조각으로 범벅되는 경험으로 사살 과정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생기고 사기가 저하되자, ‘수용소의 가스실’로 임무를 변화시켰다. 그 결과 사기 저하가 일어나지 않았다. 101 예비경찰대대도 수용소 가스실로 가는 최대 규모의 유대인 강제 이송에 관여했으나 이들은 열차 저편에서 벌어진 집단 학살로부터 자신들은 관계가 없다고 자기 정당화를 하였다. 결론적으로 아주 평범한 사람들을 학살자로 만든 것은 나치 세뇌로 인한 이데올로기나 신념이 아닌 환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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