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치 제국의 성립부터 해체의 기간인 대략 80년을 다룬 책으로, 왜 이 시기에 도이치 제국은 공격적이었는지 80년 사이에 포함된 두 세계대전 전후를 살펴본다.
책을 읽으며 내가 기존에 알지 못했던 저자의 주장만 간단히 나열하겠다(물론 책의 발간이 1987년이니 만큼 저자의 주장은 차후에 뒤집혔을지 모르므로 다른 책을 참고해야한다) . 독일은 대규모 인플레이션(1920년대)과 대공황(1930-1933) 시기에 경제파탄 피해를 완화할 수 있었음에도 배상금에 벗어나기 위해 의도적인 파산을 하였다. 예를 들어, 전쟁이 끝난 후 제때 화폐개혁을 단행했다면 대규모 인플레이션 시기에 불어닥친 모든 저축 자산의 몰수를 피할 수 있었다. 대공황의 경우 케인즈 주의를 기반으로 완화정책을 할 수 있었으나 하지 않았다. 결국 배상금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목적에선 의도적 파산이 성공했으나 이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대중의 지지가 히틀러로 이어지고야 말았다.
두 번째로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막대한 피해만 얻은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전체적인 독일 지형을 고려하면 오히려 전쟁 전보다 강화된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전쟁 전 독일은 네 개의 강대국(영국, 프랑스, 러시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포위된 지정학적 위치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전쟁 후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해체하였고, 러시아는 폴란드와 대립 관계로 치달아 독일과는 군사협력과 같은 협조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독일에게 유리한 그림이 펼쳐졌다.
마지막으로는 에른스트 프렝켈의 ⟪이중 국가⟫The Dual State라는 책에서 언급한 ‘제3제국’(자의 및 테러 지배의 국가와 습관이 된 관료 국가(심지어 법치국가)가 나란히 존재하는 상태)이 나치 독일에도 해당하는 것이었다. 즉, 히틀러 집권 시대에 기존 독일의 모든 것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옛날의 전통과 관습은 유지되면서도 나치의 활동이 그 틈새 속으로 은둔하고 있던 상태였다. 괴벨스의 선전 전략의 경우도 언론과 영화는 모두 선전에 동원되는 것이 아니라 사민당과 공산당 신문들만 금지된 채, 다양한 신민 계층 신문들은 계속 유지되었다. 다양한 언론들은 자신의 원래 양식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고, 다만 언론이 넘어서는 안 되는 경계선이 주어졌다. 이러한 괴벨스의 선전은 강제적이 아니라 천천히 공공 분위기를 조종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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