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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서평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김누리

by 권열 2020. 5. 12.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는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방영한 김누리 교수의 강연을 정리한 책이다. 그는 독일을 한국사회의 ‘요술 거울’로 주장하며 두 사회를 비교한다. 이를 통해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미래로 나아가야 할 바를 명확히 밝힌 강연은 방영 직후 높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나 역시도 인상 깊게 본 강연이기 때문에 정리된 글로 읽고 싶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저자는 한국 사회에 대한 대표적 문제점으로 ‘민주화의 부재’를 지적한다. 한국의 정치 민주화는 성공적이었고, 촛불혁명을 기점으로 민주주의 평가는 인구와 소득 수준을 고려한 강대국 내에 1등이다. 그러나 광장 민주주의만 있는 것이 문제이다. 일상 민주화, 사회 민주화, 경제 민주화, 문화 민주화와 같은 삶의 곳곳에 파고드는 민주화는 이뤄내지 못했고, 저자는 독일 사회와 대조한다. 독일 역시 처음부터 모든 민주화를 갖춘 것이 아니라 68혁명 이후 이뤄낸 성과라고 주장하며 68혁명 전후 변화를 예시로 든다. 

  68혁명이란 ‘모든 형태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기호로 교육, 문화, 경제, 사회 등 변화를 일으킨 혁명이었다. 이는 유럽을 넘어서 전 세계적 물결로 퍼졌으나, 한국에서만큼은 68혁명이 부재했다. 이유에 대해 저자는 68혁명에 불을 붙인 결정적 계기가 베트남 전쟁이었음을 설명한다.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은 오히려 지상군을 파병한 사실상 유일한 국가로, 이후 혁명은커녕 역사적 흐름에 역행하는 ‘병영사회’로의 재편했던 과거사를 지적한다. 

  저자는 한국엔 68혁명 대신, 이들과 유사한 민주화 운동을 이끈 주역인 86세대를 꼽지만 동시에 이들의 한계를 지적한다. 86세대는 민주주의를 만든 주역이었으나 단지 단 하나의 목표, 군사독재를 어떻게 타도할 것인가만 논의했을 뿐 일상적인 파시즘에 변화를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결국 그들은 오늘날의 기득권으로 자리 잡아 한국 사회를 지배의 주체만 바뀐 채로 유지했다. 여전히 사회의 비정상성은 유지된 채로 자신의 권력만을 견고히 하게 된 셈이다. 

  68혁명의 부재는 또한 한국인의 인식체계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다다르지 못한 한계를 주었다. 인권 감수성과 소비 감수성의 부재, 성교육의 부족, 경쟁을 당연시하는 태도, 현대인에게 중요한 소외 개념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저자는 한국 사회야말로 끔찍한 자기착취 사회에 놓여있다고 진단한다. 이를 방관하는 현 의회 양당제에 대해 극단적으로 우경화된 체제에 대해 비난한다. 현 양당제는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한 채, 자유시장경제화만 추구하고, 낮은 복지정책, 야수자본주의의 위험성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는 현 정치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독일이 한국 사회의 ‘요술 거울’이 될 수 있는 대표적 이유는 통일이다. 현재 한국 사회가 오해하고 있는 독일 통일에 대해 저자는 몇 가지 바로잡는다. 동독이 통일의 주체였다는 것. 빠른 통일을 선택함으로써 두 국가가 동등하게 협의할 과정을 생략해 서독 중심의 통일로 흘러버린 점. 화폐 통합의 문제에서 당시 9:1의 환율을 1:1로 통합하여 동독 지대를 거대한 실업지대로 만든 점. 그로 인해 복지 비용으로 만만치 않은 통일 비용을 치른 점 등을 설명한다. 또한 한반도 통일 이후 정치지형에 대해서도 독일을 삼아 예측한다. 현 독일은 정치를 주도하는 것이 동독 출신이고, 한국의 경우도 보수 진보 반반인 상황에서 통일이 되면 북한 주민이 지지하는 쪽으로 정치 진영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저자는 한반도 문제에 관해선 미국에 굴종하여 끌려다녀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책은 강연보다 더 분명하고 더 과감한 주장이 담겨있다. 저자가 여러 차례 강조하는 ‘정상성의 병리성’인 한국 사회는 이미 긴 노동시간, 높은 자살율로 더 이상 이대로 과도한 경쟁체제와 자유시장경제 맹신으로는 버텨낼 수 없음을 드러낸다. 대부분의 현 제도가 미국식이지만, 사회적 지옥에서 벗어나려면 저자의 주장대로 독일을 ‘요술 거울’로 삼아 바꿀 부분은 과감히 바꿔야 할 것이다. 그것은 정치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제라도 68혁명의 태도인 ‘모든 형태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떠올리며 현시대에 당연하다고 여기는 ‘비정상성’에 대해 모두가 인식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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