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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서평

캉탕, 이승우

by 권열 2020. 8. 13.

 

  풍요로운 삶을 위해 미래를 좇는 현재와,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야말로 바람직한 삶의 태도라고 외치는 목소리들 속에서 소설은 그들이 외면한 과거를 이야기한다. 과거는 지나간 시간으로만 그칠 수 없다. 시바타 쇼의  『그래도 우리의 나날』에서 등장인물 사노는 자신이 죽는 순간에 무엇을 생각할까? 물음에 ‘나는 배신자다!’라는 답이 번개처럼 스친다. 그것은 과거 메이데이 사건에서 그의 친구들이 모두 경찰 진압대에 맞설 때, 주동자인 그는 무섭다는 이유로 도망쳐버린 일 때문이다. 그는 그 일로부터 벗어나고자 최선을 다했으나 결국 삶의 최후의 순간마저도 과거에 붙잡혀버릴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사노처럼, 소설  『캉탕』에는 과거에 붙잡힌 세 사람이 등장한다. 주인공 한중수는 애써 외면하고 있던 과거의 원인을, 캉탕에서 만난 선교사 타나엘의 말 “과거는 어딘가에 웅크리고 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와 현재를 물어뜯는 맹수와 같습니다. (중략) 이 맹수가 내 과거라면 나를 물어 뜯는 것이 합당합니까? 내 과거는 나의 일부입니까, 아닙니까? 내가 나를 해칠 수 있습니까?”에 강력한 사이렌의 이명을 듣고 쓰러진 후 깨닫는다. 생존을 위해 과거를 뒤에 둔 채로 끊임없이 걷고 나아가는 자들에게선 오히려 과거를 진정으로 대면하는 것이 필요하단 것을.  

  『캉탕』의 등장인물들은 사노처럼 자살의 형태로 끝맺지 않는다. 과거의 죄와 그것을 진실로 고백하려는 노력, 구원의 테마가 소설가 이승우의 다른 작품의 특징처럼 종교적 테마를 갖는다. 뿐만 아니라 모비딕의 변주와 구약성서 요나서, 오딧세우스, 니체, 랭보 등 인용을 통해 소설을 풍부하게 읽어갈 수 있다. 소설의 구조 면에서 주인공 한중주의 노트와(메일, 혹은 일기, 혹은 기도) 한중주의 사건을 번갈아 배치하는 것 역시 소설의 재미를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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